Rev. 2.73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묘를 하기 위해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남동생 이렇게 세부자가 모여 귀향 길에 올랐다. 휴가도 다녀오지 못한 나로서는 이것으로 대신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행선지는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다. 엄밀히 말해 내 고향이기보다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아버지는 이번에 새로(속아서) 장만한 170만원짜리 차량 네비게이션을 자랑하시면서 내심 뿌듯해 하셨다. 언뜻 보기에 시중에 80만원선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고급형 네비게이션 같아 보였다. 식상해 하실까봐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이거... 완전 모르는 사람 등쳐먹는 시기꾼에게 당한 것이 분명하다. 어딘가 같이 이동 할 때면 내 PDA의 네비게이션 기능을 부러워하시던 터라 두말않고 지르셨나 보다. 여느때 처럼 운전은 나의 몫이였기에 운전석에 타려는 순간 새 네비게이션 때문인지 아버지는 굳이 운전대를 잡는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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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과수원을 운영하시는 고모님댁에 무사히 도착했다. 비포장도로를 막론하고 안내하는 네비게이션 덕분에 좀 위험하긴 했지만 말이다. 다음날 아침일찍 약간의 음식을 준비하여 성묘 길에 올랐다. 아~ 이곳은 언제와도 좋은 곳이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깨끗한 물줄기들이 무수히 많은 곳으로 이곳 저곳에 유명한 계곡들이 많다. 과수원에서 직접 딴 사과도 맛보았다. 이런 것을 두고 꿀맛이라고 하는구나... 이곳에 올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다음에 애인이 생기면 꼭 같이 놀러 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적이 없다. 성묘길에 지나치는 낯익은 풍경들은 정말 포근하다. 어릴적 자주 놀았던 다리와 길목들이 작게만 느껴진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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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도 잠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산자락에 금세 도착하였다. 역시나 숲이 우거져 묘까지 가는 길이 사라져 있었다. 이리저리 낫을 휘둘러 길을 트면서 힘겨운 이동 끝에 할아버지 산소에 도착하였다. 나는 제초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낫에 손가락을 배는 실수를 저질렀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아버지깨 알리지 말것을 협박 후 계속 작업을 진행하였고 할아버지 성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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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할머니 산소까지 가는길은 더욱 험난했다. 어버지는 앞장서서 길을 트시다가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에 엄지 손까락을 찔리셨다. 그것도 손톱 밑에 깊숙히 밖히는 중상이다.(내색은 안하셨지만 정말 아픈 곳인데...) 겨우겨우 할머니 산소까지 도착해서 다시 제초작업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중환자(?)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구 낫을 휘두르다가 그만 벌통을 건드리고 말았다. 수많은 벌들이 덤비는 가운데 면전으로 날라든 벌 한마리에게 코끝을 쏘이고 말았다. 쏘이고 나서야 벌통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괴성을 지르면서 어디론가 달려가야만 했다.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싶을정도로 쓰라리고 욱신댄다. 어떻게 성묘를 마쳤는지 기억 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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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친척분들께 가볍게 인사를 드린 후 곧장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운전은 내가 맡았다. 주말이라 차들이 제법 많았다. 참다 못한 아버지는 버스 전용 도로로 가라고 명령을 하셨고 들어서자 마자 재미도 못보고 짭새에게 걸리고 말았다. 30점 벌점에 6만원 벌금 물고 분위기 싸~한 상황에서 한참을 지루하게 올라오던 중 동생녀석 네비게이션이 신기하다고 이것저것 만져본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시금 대화의 꽃이 필무렵 동생녀석이 네비게이션을 고장내고 말았다. 아버지는 도착 할 때까지 말씀이 없으셨다.

6시간의 장정 끝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네비게이션 A/S를 맡겨야 한다며 동생녀석의 차를 빼앗아 가셨다. 동생녀석도 울상이다. 그리고 뒤늦게 알아낸 사실은... 벌통집 앞에 내 안경을 떨구고 와버렸다는 것이다... Orz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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